건조기 앞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한숨,
그때 처음
탄저병을 알았습니다.
건조한 고추를 꺼내자
매콤한 고추 향보다
먼저 한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는 말없이
검게 변한 마른 고추를
한 움큼 보여주셨습니다.
분명 며칠 전
수확할 때만 해도
깨끗했던 고추였습니다.
그런데 건조를 하고 나니
군데군데 검게 썩어
상품성이 없어졌습니다.
“이건 팔지도 못하겠네.”
그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탄저병이
수확 후 생기는 병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농촌진흥청 자료를 찾아보고
농업기술 자료를 읽어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탄저병은
건조기할 때 생기는 병이 아니라,
장마철 밭에서
이미 시작되는 병이었습니다.
건조 과정은
숨어 있던 병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어머니와 함께
비가 온 다음 날이면
고추밭을 한 바퀴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농촌진흥청 농사로,
농약정보서비스,
농업과학도서관 자료를 바탕으로
고추 탄저병이 왜 생기는지,
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지,
그리고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탄저병은 왜
고추 농가가
가장 무서워하는
병일까?
고추를 키우다 보면
역병, 칼라병, 흰가루병처럼
여러 병해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농업인이
가장 걱정하는 병을 하나 꼽으라면
탄저병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몇 달 동안 키운 고추를
수확 직전에
한꺼번에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탄저병은
곰팡이(Colletotrichum spp.)가
원인이 되는 병입니다.
특히 과실을 집중적으로 감염시키며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매우 빠르게 확산됩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노지 고추 재배에서
가장 피해가 큰 병해 가운데 하나로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흥작소 TIP
탄저병은
잎보다 과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병든 과실 하나가
다음 감염원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잎만 살펴봤는데,
지금은 고추를 하나씩 돌려보며
작은 갈색 반점이 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왜 장마철만 되면
탄저병이
급격히 늘어날까?
많은 분들이
“비가 많이 와서 생긴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정확히는
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빗방울이 병원균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탄저병균은
병든 열매에서
수많은 포자를 만들어 냅니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이 포자를 튀겨
바로 옆 고추까지
감염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장마가 길수록
탄저병 피해도 커집니다.
탄저병이 좋아하는 환경
| 환경 | 발생 위험 |
|---|---|
| 25~30℃의 기온 | 매우 높음 |
| 장마철 잦은 강우 | 매우 높음 |
| 과실이 오래 젖어 있는 상태 | 매우 높음 |
| 통풍이 나쁜 포장 | 높음 |
| 배수가 불량한 밭 | 높음 |
결국 탄저병은
‘습도와 시간의 병’입니다.
고추가 얼마나 오래 젖어 있느냐가
발병을 크게 좌우합니다.
따는 순간은
멀쩡했는데,
왜 건조하면 썩을까?
어머니도 가장
궁금해하셨던 부분입니다.
“딸 때는 멀쩡했는데
왜 말리고 나니 썩는 거지?”
답은 잠복감염입니다.
탄저병균은
이미 열매 안으로 침입했지만
겉으로는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건조 과정에서
수분이 빠지고
조직이 변화하면서
숨겨져 있던 병반이
급격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확 후 탄저병이 생긴 것이 아니라
수확 전에 이미
감염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흥작소 TIP
건조기에 넣기 전
고추를 한 번 더 선별하는 것만으로도
상품성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작은 갈색 반점이 있는 과실은
따로 분리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고추 탄저병
초기 증상,
이것만 기억하세요
탄저병은 초기에 발견할수록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 진행 단계 | 주요 증상 |
|---|---|
| 초기 | 작은 갈색 점 또는 원형 반점 |
| 진행 | 병반이 점점 커지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감 |
| 후기 | 분홍색 또는 주황색 포자층 형성 |
| 말기 | 과실 전체 부패, 건조 후 검게 변색 |
초기에 보이는 작은 점 하나를
그냥 지나치면
장마철에는
며칠 사이 주변 과실까지
감염될 수 있습니다.

오늘 바로
확인해 보세요
혹시 지금 고추를 키우고 있다면
오늘 저녁 10분만 시간을 내보세요.
✔ 과실에 작은 갈색 점은 없는지
✔ 병든 고추가 그대로 달려 있지는 않은지
✔ 비 온 뒤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없는지
✔ 잎이 너무 무성해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은 없는지
이 네 가지만 확인해도
탄저병 피해를 줄이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방이
최고의 방제인 이유,
탄저병은 치료보다
관리가 먼저입니다
고추 탄저병은
병이 보인 뒤에도 방제가 가능하지만,
이미 감염된 열매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농촌진흥청에서도
예방 중심의 관리를
가장 중요한 방제 원칙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병이 생기면
약을 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안타깝지만
탄저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탄저병균은 병반이 보이기 전에
이미 과실 안으로
침입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병반은
이미 감염이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즉,
병이 보인 뒤 약을 치는 것보다,
병이 생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흥작소 TIP
탄저병은
농약으로 해결하는 병이 아니라
재배관리와
농약을 함께 사용하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배수와 통풍이 나쁜 밭에서는
아무리 좋은 약제를 사용해도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장마철,
이것만 관리해도
탄저병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① 배수가 잘되는 밭을
만드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왜 두둑을
그렇게 높게 만드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경험에서 나온
습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해보니
가장 기본적인
탄저병 예방법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도
물이 오래 고이지 않으면
고추는 빨리 마르고
병원균이 활동하는 시간도 줄어듭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배수로가 막히지 않았는지
한 번만 확인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
② 통풍이
잘되는 고추밭이
탄저병을 줄입니다.
고추는 잘 자랄수록
잎이 무성해집니다.
하지만 잎이 너무 많으면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습니다.
결국 잎과 과실이
오랫동안 젖어 있게 되고
탄저병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곁순을 적절히 제거하고
밀식된 부분은 통풍이 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③ 병든 고추 하나가
밭 전체를 감염시킬 수도
있습니다.
탄저병에 걸린 과실을
“나중에 따야지.”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병든 과실에서는
계속해서 병원균 포자가 만들어집니다.
비가 오면
빗방울과 함께 주변 과실로 튀어
새로운 감염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병든 과실은
발견 즉시 제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제거한 과실은
밭 가장자리에 버리지 말고
밭 밖으로 가져가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탄저병
저항성 품종을 심으면
농약을
덜 쳐도 될까요?
최근 종묘상에 가보면
‘탄저병 저항성’
이라는 문구가 적힌 품종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품종은
병이 전혀 생기지 않을까요?
답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항성은
병이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병이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줄여주는 특성을 의미합니다.
즉, 같은 환경에서
발병 시기가 늦어지고
피해 정도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장마가 길고
탄저병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저항성 품종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재배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품종을 고를 때는
이것도 함께
확인하세요.
품종 설명서를 보면
다양한 저항성 정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면 다음 사항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확인 항목 | 이유 |
|---|---|
| 탄저병 저항성 | 과실 피해 감소 |
| 역병 저항성 | 토양전염병 예방 |
| 바이러스 저항성 | 후기 생육 안정 |
| 재배 적응 지역 | 지역 기후 적합성 |
| 노지·시설 재배 적합성 | 재배 환경에 맞는 선택 |
흥작소 TIP
품종 선택은
한 해 농사의
절반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탄저병이 자주 발생했던 밭이라면
다음 해에는 저항성 품종을
우선 고려해 보세요.
농약은 ‘좋은 약’보다
‘맞는 약’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추 탄저병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농약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 살균제나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농약은
작물마다, 병해마다,
사용 가능한
약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농약정보서비스에서
- 작물명 : 고추
- 병해명 : 탄저병
을 선택해 등록된 약제를 확인한 후
사용해야 합니다.

약제를 선택할 때는
다음 항목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확인 항목 | 왜 확인해야 할까요? |
|---|---|
| 등록 여부 | 고추 탄저병에 사용할 수 있는 약제인지 확인 |
| 희석배수 | 약효와 약해를 좌우 |
| 사용 횟수 | 안전사용기준 준수 |
| 수확 전 살포일(PHI) | 안전한 출하를 위해 필수 |
| FRAC 작용기작 그룹 | 교호살포를 위한 계통 확인 |
보호살균제와
침투이행성 살균제의 차이
농약도 모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구분 | 특징 | 사용 시기 |
|---|---|---|
| 보호살균제 | 병원균이 침입하기 전에 보호막을 형성 | 장마 전, 예방 방제 |
| 침투이행성 살균제 | 식물체 안으로 흡수되어 초기 감염을 억제 | 병 발생 초기 |
그래서 농촌진흥청에서도
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흥작소 TIP
비가 온 뒤 병이 보이기 시작해서
약을 찾기보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등록 약제로
예방 관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작용기작이
다른 약제를
교호 살포해야 하는
이유
탄저병 방제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약제를 교호살포하세요.”
하지만 왜 교호살포를 해야 하는지까지
설명하는 글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에 A농약을 썼으니
다음에는 B회사 제품을 쓰면 되겠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나 제품명이 달라졌다고 해서
교호살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용기작(Mode of Action) 입니다.
작용기작이란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병원균을 죽이는 방법입니다.
사람도 감기에 걸렸을 때
해열제와 항생제가 하는 일이 다르듯,
살균제도 병원균을 공격하는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어떤 약제는
병원균의 호흡을 막고,
어떤 약제는
세포분열을 방해하며,
또 다른 약제는
핵산 합성을 억제합니다.
이처럼 병원균을 억제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작용기작이라고 합니다.
왜 같은 약만
계속 사용하면
안 될까요?
예를 들어
같은 문제집만 계속 풀면
답을 외우게 되는 것처럼,
병원균도 같은 방식의 공격을
반복해서 받으면
그 환경에 살아남는 개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약제 저항성입니다.
그래서 농촌진흥청과
농약정보서비스에서도
동일한 FRAC 작용기작 그룹의 약제를
반복 사용하지 말고
서로 다른 작용기작 그룹의 약제를
교대로 사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흥작소 TIP
제품명이 다르다고
작용기작까지 다른 것은 아닙니다.
농약을 구매할 때는
라벨에 표시된 표시기호도
함께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같은 그룹의 약제를
계속 사용하는 것보다
다른 그룹의 약제를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약제 저항성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표시기호를 확인하세요!)
생육 단계별
탄저병 관리 달력
탄저병은 한 번의 방제로
끝나는 병이 아닙니다.
생육 단계에 맞춰 관리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 시기 | 관리 내용 | 핵심 포인트 |
|---|---|---|
| 정식 후 (5~6월) | 배수로 정비, 병든 잔재물 제거 | 병원균 밀도 낮추기 |
| 생육기 (6월 중·하순) | 곁순 제거, 통풍 확보 | 장마 전 예방 준비 |
| 장마 시작 전 | 등록 약제 예방 살포 | 보호살균제 활용 |
| 장마철 | 병든 과실 제거, 예찰 강화 | 강우 후 빠른 대응 |
| 발생 초기 | 등록 약제 사용 및 교호살포 | 작용기작 그룹 변경 |
| 수확기 | 병든 과실 선별, 건조 전 확인 | 잠복감염 과실 제거 |
흥작소 TIP
장마가 시작된 뒤
농약을 찾는 것보다,
장마가 오기 전
고추밭을 한 번 둘러보는 것이
훨씬 큰 효과를 가져옵니다.
고추 탄저병, 이것만 기억하세요
글이 길어서 핵심만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 장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예방 관리를 시작합니다.
✔ 배수가 잘되도록 두둑과 배수로를 관리합니다.
✔ 잎이 너무 무성하지 않도록 통풍을 확보합니다.
✔ 병든 과실은 발견 즉시 제거하여 밭 밖으로!
✔ 탄저병 저항성 품종을 선택하자!
✔ 농약은 반드시 농약정보서비스에서 등록 여부 확인!
✔ 동일한 작용기작의 약제를 반복하지 말고 교호살포
자주 묻는 질문(FAQ)
Q1. 탄저병에 걸린
고추는먹어도 되나요?
탄저병에 병든 부위는 잘라내고
쪼개어 건조하면 식용이 가능합니다.
Q2. 비가 온 뒤 바로
농약을 뿌리면 될까요?
강우 직후에는 포장 상태와
약제 특성을 함께 고려해서 방제하면 됩니다.
특히, 등록 약제의 사용설명서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3. 저항성 품종이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나요?
아닙니다.
저항성 품종은 피해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뿐이며,
배수 관리, 통풍 확보, 예찰,
예방 방제를 함께 해야
안정적인 재배가 가능합니다.
Q4. 교호살포는
회사만 바꾸면 되나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제품명이 아니라
FRAC 작용기작 그룹입니다.
같은 그룹을 반복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약제 저항성 관리의 핵심입니다.
마무리
요즘도 장마가 시작되면
가끔 어머니께 묻습니다.
“고추는 괜찮아요?”
그러면 예전과 달리
먼저 고추를 따기보다
고추밭을 한 바퀴 둘러보신 뒤
대답하십니다.
병든 과실은 없는지,
물이 고인 곳은 없는지,
잎이 너무 무성하지는 않은지.
그 작은 습관이
탄저병 피해를 줄여준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모습을 보면서
농사는 거창한 기술보다
매일 조금씩 살펴보는 관심이
가장 큰 기술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오늘 단 10분만 시간을 내어
고추밭을 천천히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작은 갈색 반점 하나를
오늘 발견하는 것과,
일주일 뒤 발견하는 것이
올가을 수확량과 상품성을
크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탄저병은
수확기에 생기는 병이 아니라,
장마철에
예방으로 결정되는 병입니다.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 입니다.

